신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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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07 09:45:54, 조회 : 754 |

나(신상철)는 평산신씨 34세로 짝수세대라 마지막 자인 澈(철)을 항렬자로 쓰고 있으며 동석은 35세로 홀수세대이기 때문에 첫 자인 東(동)을 항렬자로 쓰고 있는 것이다
[유래]
시조 신숭겸(申崇謙)의 원래 이름은 삼능산(三能山)이며 전라도 곡성에서 태어났다.
그는 궁예가 세운 나라인 태봉의 기장으로 있다가 궁예가 왕위에 즉위한지 몇 년 만에 처자식을 살해하고 백성을 혹사하는 등 폭정이 날로 심해지자 당시 동료 기장이었던 복지겸, 배현경, 홍유 등과 함께 궁예를 추출하기로 하고 왕건에게 왕창근, 송합홍 등 점술가의 예언을 설명하면서 거사를 권하여 왕건을 고려 태조로 옹립한 개국원훈대장군으로 '고려사'에 고려 개국 4공신의 한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루는 왕건이 장군들과 평주(평산)에 사냥을 나가는 도중에 기러기 세 마리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누가 저 기러기를 쏘아서 맞힐 수 있는가?" 하고 물으니 신숭겸이 자신이 맞추겠다고 하며 "몇 번째 기러기를 맞출까요?"
하며 물어보자 셋째 기러기 왼쪽 날개를 맞추라고 하자 날아가는 세 번째 기러기의 왼쪽날개를 맞추어서 떨어뜨렸다.
태조가 탄복하고 근처 땅 300결을 하사하고 함께 본관을 평산으로 삼게 했다.
927년(태조 10년) 대구 공산동 전투에서 견훤에게 포위되어 전세가 위급하자 태조와 용모가 비슷한 그는 태조를 피신케 하고 대신 어차를 타고 출전하여 전사하였다. 그래서 태조는 그의 유해를 춘천에 예를 올려 장사 지내고 공신으로 추봉하고 시호를 장절이라고 했다.
1120년(고려 예종 15년) 예종이 신숭겸과 김락을 추모하여 '도이장가'를 지었다.
묘소는 강원도 춘성군 서면 방동리에 있고 음력 3월 3일과 9월 9일에 향사한다.
인구는 1985년 현재 460,238명이 있다.
평산신씨 홈페이지는 http://www.pyeongsa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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